한보그룹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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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단체
정태수가 설립하여 건설업과 철강업을 중심으로 형성하였던 기업 집단.
단체
설립 시기
1974년
해체 시기
1997년
설립자
정태수
설립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보그룹은 정태수가 설립하여 건설업과 철강업을 중심으로 형성하였던 기업 집단이다. 정태수가 1974년 설립한 한보상사를 모체로 한다. 한보그룹은 1980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뒤, 1984년 철강업으로 진출했다. 한보그룹은 1990년대 동안 당진제철소 건설과 인수 합병을 통해 사업 규모를 확장했다. 당진제철소 건설이 진행 중인 1997년 1월 부도 이후 한보그룹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목차
정의
정태수가 설립하여 건설업과 철강업을 중심으로 형성하였던 기업 집단.
연원 및 변천

한보그룹은 세무 공무원이었던 정태수가 오래전 폐광된 경남 울진의 몰리브데넘 광산을 인수한 뒤, 이것의 해외 수출을 위해 1974년 설립한 한보상사를 모체로 한다. 동시에 한보상사는 주택 건설 사업에도 진출하여, 1974년 서울 구로동 영화아파트, 1977년 서울 신림동 미도아파트 등의 분양에 성공하며 사업 기반을 다졌다. 또한 1979년에는 초석건설을 인수하여 해외 건설업으로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보그룹의 본격적인 성장 시점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1980년이었다. 1979년에 완공된 은마아파트는 당시 아파트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인 4,368가구였다. 은마아파트 분양은 1978년 시작 당시에는 부동산 투기 억제 대책과 맞물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1980년 초부터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한보그룹은 1984년 (주)금호의 철강사업 부문의 부산 공장을 인수하여 철강산업에 진출했다. 당초 목적은 철강산업의 진출이 아닌 공장 부지를 활용한 아파트 건설이었으나, 이후 국내외 철근 시장 활황으로 인해 한보그룹은 부산 공장 운영을 계속했다. 이후 철강사업은 한보그룹의 주력 산업이 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한보그룹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사업 확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졌다. 하나는 당진제철소 신설이었다. 한보그룹은 부산 공장의 확장 이전을 위해, 충남 당진군 아산만 일대에서 신규 제철소 건설에 착수했다. 1986~1987년 동안 입지 조사 및 선정 작업을 거친 후, 1990년 12월부터 매립 공사를 했고, 1993년 10월부터 공장 건축 공사에 들어갔다. 다른 하나는 인수 합병을 통한 규모 및 사업 영역 확대였다. 1992년까지 한보그룹의 계열사는 한보철강공업, (주)한보, 한보에너지, 한보기업 총 4개에 불과했으나, 1993년에는 승보목재, 상아제약 등을 인수하여 10개가 되었으며, 1995년 유원건설 인수 후에는 총 20개, 1996년 말에는 총 22개까지 늘어났다. 이같은 계열사 확장의 결과, 한보그룹은 1995년 말 자산 기준 재계 순위 14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보그룹은 1997년 1월 23일 채권은행단에 의해 최종 부도처리된 이후 사실상 해체되었다. 당시 건설중이던 당진제철소 공사 계획이 수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그 규모와 비용 모두 크게 증가했는데, 계속 증가하는 한보그룹의 추가 대출 요청을 1996년 말부터 채권 은행단이 거부한 결과였다. 1989년 당초 계획상 당진제철소에는 총 1조1215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1994년 5차 수정 계획안은 3조6900억 원, 1996년 7차 수정 계획안은 5조7265억 원의 총 사업비를 담고 있었다.

이 같은 당진제철소 건설 사업비 증가의 명분은 공정 추가 및 최신 설비 도입이었다. 1989년 당초 당진제철소 건설 계획은 단순한 부산 공장의 확장 이전이었다. 그런데 1992년 2차 변경안에는 전기로 설비로 판재류 제품을 생산하는 ‘박슬래브’ 설비를 도입하려는 계획이 추가되었고, 1994년 5차 변경안에는 코렉스(COREX) 공법을 도입하여 당진제철소를 제선 공정이 포함된 일관 제철소로 만들려는 계획이 더해졌다. 만약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되었다면 한보그룹은 포항제철 이후 일관 제철소를 소유한 최초의 민간 기업이 되었겠지만, 아직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최신 공법 도입에 대한 의구심도 높았던 상황이었다.

한보그룹 부도 직후, 한보가 당진제철소 건설에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당시 대통령 김영삼의 차남 김현철을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과의 유착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여러 언론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한보그룹 부도 3개월 뒤인 1997년 4월에는 한보 사건 국정 조사 특별위원회가 열렸다.

한보그룹 부도의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대기업 연쇄 도산(連鎖倒産)이었다. 한보그룹은 당시 재계에서 자산 기준 14위, 여신(與信) 규모 기준 9위에 올라있던 만큼, 한보그룹 부도는 국내 금융 시장에서 신용 경색(信用梗塞)을 초래했던 것이다. 특히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主去來銀行)이면서 한보그룹 부도 당시 큰 손실을 입은 제일은행이 1997년에 도산한 삼미특수강과 기아그룹의 주거래 은행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한보그룹 부도가 1997년 대기업 연쇄 도산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 준다.

한보그룹 해체 후 주요 계열사는 매각되거나 폐업했다. 계열사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한보철강공업은 1997년 1월 부도 후 매각 과정에서 사실상 세 차례 유찰을 겪은 뒤 2004년에 당시 INI STEEL에 인수되었다. 한보철강공업 인수 후 현대제철은 당진제철소 부지를 더 확장하여 이곳에 일관 제철소를 건립했다. (주)한보는 분할 매각(分割賣却)되었는데, 그중 주택사업 부문은 2002년 진흥기업에, 철강사업 부문의 부산 공장은 2002년 일본 야마토공업에 각각 매각되었다. 한보건설은 2001년 미국 울트라콘에 매각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오형석, 「한국 발전국가 전환과 1997년 한보사태」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9)
집필자
오형석(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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