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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우회 사건은 1938년, 농촌계몽을 위해 조직된 농우회를 일제가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며 그 참여자들을 예비 검속 차원에서 혐의를 조작하고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의 개량을 도모하는 등 농촌사회 진흥을 위한 활동에 대해 1938년 일제가 조선 독립을 도모했다고 조작하며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 사건 (農友會 事件)
농우회 사건은 1938년, 농촌계몽을 위해 조직된 농우회를 일제가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며 그 참여자들을 예비 검속 차원에서 혐의를 조작하고 탄압한 사건이다. 농우회를 중심으로 농촌계몽을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적 정신에 기초하여 협동조합을 만들고,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의 개량을 도모하는 등 농촌사회 진흥을 위한 활동에 대해 1938년 일제가 조선 독립을 도모했다고 조작하며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이다.
박학전은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목사, 농촌운동가이다. 1905년 평안남도 안주군 출생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입학 후 조만식의 지도 아래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3년 일본에서 종교교육과 사회사업을 공부한 후 이듬해 귀국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농사강습회 개최, 농촌지도자 양성, 협동조합·소비조합 결성 등 다양한 농촌운동에 힘썼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이듬해 농우회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국제인권옹호회 경기도 본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에 사망하였다.
박학전 (朴鶴田)
박학전은 해방 이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목사, 농촌운동가이다. 1905년 평안남도 안주군 출생으로, 평양 장로회신학교 입학 후 조만식의 지도 아래 농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3년 일본에서 종교교육과 사회사업을 공부한 후 이듬해 귀국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농사강습회 개최, 농촌지도자 양성, 협동조합·소비조합 결성 등 다양한 농촌운동에 힘썼다. 1937년 동우회사건으로, 이듬해 농우회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서울시 사회국장, 인천시장, 국제인권옹호회 경기도 본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