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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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는 문주왕의 아우이자, 동성왕의 아버지이다. 곤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61년에는 왜국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후 내신좌평에 임명되지만, 3개월 만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곤지의 역할과 동향을 통해 백제계 도왜인의 흔적과 웅진 천도 이후 왕위 계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곤지 (昆支)
곤지는 문주왕의 아우이자, 동성왕의 아버지이다. 곤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61년에는 왜국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후 내신좌평에 임명되지만, 3개월 만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곤지의 역할과 동향을 통해 백제계 도왜인의 흔적과 웅진 천도 이후 왕위 계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무령왕 (武寧王)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 때 후위 수십만 대군의 백제 침공 당시의 장수.
사법명 (沙法名)
삼국시대 백제의 제24대 동성왕 때 후위 수십만 대군의 백제 침공 당시의 장수.
사정성(沙井城)은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에 있는 석성이다. 사정성은 백제 동성왕 20년(498)에 축조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아울러 백제 성왕 4년(526)에는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왕 때 축성했다는 사정성이 현재 대전에 있는 사정성인지, 동성왕 때 축조한 사정성과 성왕 때의 사정책이 동일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백제 부흥운동기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과 대전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사정책을 함락시킨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정성과 사정책은 다른 유적이라 볼 수 있다.
사정성 (沙井城)
사정성(沙井城)은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에 있는 석성이다. 사정성은 백제 동성왕 20년(498)에 축조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아울러 백제 성왕 4년(526)에는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왕 때 축성했다는 사정성이 현재 대전에 있는 사정성인지, 동성왕 때 축조한 사정성과 성왕 때의 사정책이 동일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백제 부흥운동기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과 대전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사정책을 함락시킨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정성과 사정책은 다른 유적이라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위사좌평을 역임한 귀족.
백가 (苩加)
삼국시대 백제의 위사좌평을 역임한 귀족.
임류각(臨流閣)은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이다.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임류각은 동성왕 실정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로 볼 수 있다.
임류각 (臨流閣)
임류각(臨流閣)은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이다.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임류각은 동성왕 실정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