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류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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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대사
유적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
유적/건물
건축 양식
누각
건립 시기
백제시대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내용 요약

임류각(臨流閣)은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이다.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임류각은 동성왕 실정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로 볼 수 있다.

목차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
개요

충청남도 공주시 주1에 있었던 백제 24대 동성왕 때 지어진 누각이다. 임류각은 금강 변의 산기슭에 자리하였다고 추정하거나, 공산 남쪽의 산성동 · 중동 · 옥룡동의 사면에 자리하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공산성 내의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결정적 근거라고 생각되는 ‘류(流)’ 자가 새겨진 기와가 다른 곳에서도 출토되어 확실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왕궁을 공산성으로 본다면 동쪽 봉우리 방면에 자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변천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4 동성왕 22년조에 의하면 “봄에 임류각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길〔丈〕이었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들이 반대하며 상소하였으나 대답하지 않고, 다시 간하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궁궐 문을 닫아 버렸다.”라고 하여 500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해 5월 좌우의 측근과 더불어 임류각에서 밤이 새도록 연회를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동성왕은 같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21년 여름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고, 도적이 많이 생겼다.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제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라고 하여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어 연회를 즐기는 왕으로 기술하였다. 이를 통하여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임류각은 동성왕 말년 실정의 대표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임류각은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주2 유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원지 유적은 한성 시기 진사왕 때 궁실 수축 기사에도 나타나고, 사비 시기 주3의 조성에서도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兪元載, 『熊津百濟史 硏究』(주류성, 1997)
『공산성』(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82)
輕部慈恩, 『百濟遺蹟の硏究』(吉川弘文館, 1971)

논문

여호규, 「백제 熊津 都城의 왕궁 위치와 조영과정」(『梨花史學硏究』 55, 2017)
이도학, 「百濟 熊津都城 硏究에 관한 檢討」(『동아시아고대학』 23, 2010)
김기섭, 「百濟 東城王의 즉위와 정국 변화」(『韓國上古史學報』 50, 2005)
정재윤, 「東城王의 卽位와 政局 運營」(『韓國古代史硏究』 20, 2000)
朴淳發, 「百濟 都城의 變遷과 特徵」(『重山 鄭德基博士華甲紀念 國史學論叢』, 京仁文化社, 1996)
安承周, 「百濟 都城(熊津城)에 對하여」(『百濟硏究』 19, 1988)
金永培, 「公州 百濟王宮 및 臨流閣址 小考」(『考古美術』 56 · 57, 考古美術同人會, 1965)
주석
주1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공산(公山) 위에 있는 산성. 사적 정식 명칭은 ‘공주 공산성’이다.    우리말샘

주2

정원과 못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의 별궁 연못. 무왕 35년(634)에 연못을 궁 남쪽에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연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 있어 가운데에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따위가 출토되었다. 사적 정식 명칭은 ‘부여 궁남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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