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
개요
반면 결정적 근거라고 생각되는 ‘류(流)’ 자가 새겨진 기와가 다른 곳에서도 출토되어 확실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다만 왕궁을 공산성으로 본다면 동쪽 봉우리 방면에 자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변천
그런데 동성왕은 같은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21년 여름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서로 잡아먹고, 도적이 많이 생겼다.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제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라고 하여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호화로운 임류각을 지어 연회를 즐기는 왕으로 기술하였다. 이를 통하여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임류각은 동성왕 말년 실정의 대표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임류각은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 유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형태의 원지 유적은 한성 시기 진사왕 때 궁실 수축 기사에도 나타나고, 사비 시기 궁남지의 조성에서도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 兪元載, 『熊津百濟史 硏究』(주류성, 1997)
- 『공산성』(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82)
- 輕部慈恩, 『百濟遺蹟の硏究』(吉川弘文館, 1971)
논문
- 여호규, 「백제 熊津 都城의 왕궁 위치와 조영과정」(『梨花史學硏究』 55, 2017)
- 이도학, 「百濟 熊津都城 硏究에 관한 檢討」(『동아시아고대학』 23, 2010)
- 김기섭, 「百濟 東城王의 즉위와 정국 변화」(『韓國上古史學報』 50, 2005)
- 정재윤, 「東城王의 卽位와 政局 運營」(『韓國古代史硏究』 20, 2000)
- 朴淳發, 「百濟 都城의 變遷과 特徵」(『重山 鄭德基博士華甲紀念 國史學論叢』, 京仁文化社, 1996)
- 安承周, 「百濟 都城(熊津城)에 對하여」(『百濟硏究』 19, 1988)
- 金永培, 「公州 百濟王宮 및 臨流閣址 小考」(『考古美術』 56 · 57, 考古美術同人會, 196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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