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군수물자 관련 창고터.
발굴 경위와 결과
이후 1981년과 1982년 2차에 걸쳐 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결과 근세 조선시대 전기에 세워졌던 창고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내부에 보관된 곡물들이 화재를 입어 그 자리에 그대로 퇴적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 세워진 창고들은 모두 4동이며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북고(北庫), 동고(東庫), 남고(南庫), 서고(西庫)로 부른다.
형태와 특징
특징적인 것은 4동 모두 건물의 4면을 돌아가면서 견고한 돌벽을 구축한 점이다. 이 돌벽의 폭은 북고의 경우 1.3~1.5m이고 다른 창고들도 1.1~1.2m에 이르는 두꺼운 벽을 쌓아 올렸다.
또한 벽체 하부에 배열된 주춧돌들이 그 위에 세운 기둥의 부식을 막기 위하여 평기와들을 원통형으로 돌려 세워서 습기를 차단하였다. 서고 바로 인근에는 큰 부뚜막이 설치되었으며, 취사장으로 추측되는 소가옥(小家屋)의 자리와 그 옆에 기와를 쌓아 놓는 와적(瓦積) 저수시설이 함께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속시설의 설치로 미루어 보아 서고의 일부가 관리사(管理舍)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백제시대까지 연대가 소급될 수 있는 유구로서는 창고의 바닥 밑에 있는 풍화암반층에서 약간의 기둥구멍들이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은 탄화미와 철제 자물통 및 소수의 토기들 이외에 백제시대 연꽃무늬기와 조각 일부가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 『扶蘇山城 發掘調査報告書 Ⅴ』(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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