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백제의 지명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 일대로 비정되며,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일대까지 관할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때는 목우현(目牛縣), 고려시대에는 고구현(高丘縣)이라 불렀다.
우견현이 있었던 천수만 일대는, 홍성군 결성면 금곡리에 있는 신금성에서 4세기 중엽에 해당하는 백제 세발토기〔三足土器〕와 서진대의 전문도기(錢文陶器)가 출토되어 백제의 내포 일대 진출의 거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백제-왜로 연결되는 해상 교역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해안 경로를 통한 금강 유역과 영산강 유역 지배를 관철시키기 위해 설치된 해상 거점으로 보기도 한다.
우견현은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금물현(今勿縣)과 함께 예산군 덕산면 일대로 추정되는 마시산군(馬尸山郡)에 속한 현이다. 이를 통해 우견현의 설치 목적은 천수만 일대에서 가야산을 넘어 예산과 홍성 방면으로 접근하는 세력을 방어하는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홍성에 속하지만 서산 읍내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기군(基郡)과도 연결되어 천수만을 따라 방어선을 형성하였다고 생각된다. 실제 고북면과 해미면의 방어선이 확인된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갈산면 취생리와 서산시 고북면 신송리 사이에 위치한 해발 228m의 봉화산성은 백제 우견현 혹은 통일신라시대 목우현과 관련된 성으로 보는 연구 성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