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백제의 2개 수도를 말한다. 『구당서(舊唐書)』 백제전에 따르면 왕은 동 ‧ 서 양성에 거주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동 ‧ 서 양성의 후보로는 먼저, 사비를 제외한 익산과 웅진이 언급되고 있다. 익산은 백제의 또 다른 도읍지 내지는 별도의 부(部) 역할을 하였다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별궁 내지는 이궁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기 때문에 의견이 엇갈린다.
반면 웅진으로 보는 견해는 사비 시기에 왕이 자주 행차하였던 곳은 웅진성이며, 무왕과 의자왕 대 관련 기록을 통해서 입증된다. 실제 630년(무왕 31), 사비궁을 수리할 때 왕이 웅진성에 행차하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수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익산과 웅진은 도읍인 사비와 별도로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익산과 웅진 지역은 동 ‧ 서 방향이라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이와 달리 사비 지역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구당서』에서 언급되는 서융(西戎) 파사국(波斯國)의 경우 왕은 두 성에 거주한다고 하여 이궁과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예에 따라 사비 지역을 포함한다면 2개의 수도 가운데 하나는 웅진 혹은 익산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사비와 익산 혹은 사비와 웅진이 각각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사비를 포함시킬 경우 동서 방향에 대한 해석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