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동학농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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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전투는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이다. 삼례에서 제2차 기포한 전봉준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 등 북접이 협력하여,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부여와 논산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견고한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참패하였다.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우금치전투 (牛金峙戰鬪)
우금치전투는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이다. 삼례에서 제2차 기포한 전봉준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 등 북접이 협력하여,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동학농민군은 부여와 논산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우고 공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은 우세한 화력을 가진 관군과 일본군의 견고한 수비를 돌파하지 못하고 참패하였다.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소모관(召募官)은 군사 또는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직이다. 민란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해당 지방의 민병대를 임시로 지휘하던 소모사(召募使) 예하의 직책으로, 지역주민을 모으고 적정을 탐지하거나 전투에 참가하였다. 고종 대인 1894~1895년에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체포 및 처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소모관 (召募官)
소모관(召募官)은 군사 또는 의병을 모집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직이다. 민란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해당 지방의 민병대를 임시로 지휘하던 소모사(召募使) 예하의 직책으로, 지역주민을 모으고 적정을 탐지하거나 전투에 참가하였다. 고종 대인 1894~1895년에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체포 및 처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고, 1895년 을미사변 이후에는 의병을 모으는 역할을 하였다.
진남영은 조선 말기, 충청도 청주에 설치하였던 군영(軍營)이다. 고종 대에 중앙의 친군영 체제가 지방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1887년 충청도 청주에 설치된 군영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농민군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장졸이 살해된 바 있다. 갑오개혁 시기 폐지되었다.
진남영 (鎭南營)
진남영은 조선 말기, 충청도 청주에 설치하였던 군영(軍營)이다. 고종 대에 중앙의 친군영 체제가 지방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1887년 충청도 청주에 설치된 군영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농민군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장졸이 살해된 바 있다. 갑오개혁 시기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