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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송진우 (宋鎭禹)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만식 (曺晩植)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백인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 대한민국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등을 지낸 군인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다. 정부 수립 후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하였다. 전역 전인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
백인엽 (白仁燁)
백인엽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장교, 대한민국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등을 지낸 군인이다. 일제강점기에 메이지대학과 일본 육군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군에서 장교로 근무하였다. 정부 수립 후 제17연대장, 수도사단장, 육군 제1훈련소장, 제1군단장, 육군 기획관리참모국장 등을 지낸 뒤 1960년 예편하였다. 전역 전인 1958년 선인학원을 설립하였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1993년 각종 부정과 비리 등으로 인해 학내 분규가 계속되자, 공립화를 조건으로 인천시에 선인학원을 기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