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목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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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동학」· 「농부와 아들」·「여공」·「지옥도」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판화가.
오윤 (吳潤)
해방 이후 「동학」· 「농부와 아들」·「여공」·「지옥도」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판화가.
「걸인과 꽃」은 최지원이 1939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종이에 목판화로, 크기는 세로 62.5㎝, 가로 47.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인으로는 목판화로 처음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꽃을 든 걸인이 항아리를 이고 지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을 음각과 양각의 교차로 공간을 분할하고 굵은 선의 강약을 살려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걸인과 꽃」은 공적 공간에 전시되는 감상의 대상이자 개인의 내적 표현언어로서의 판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최지원의 판화작업은 이후 주호회 작가들을 통해 한국 현대판화로 이어졌다.
걸인과 꽃 (乞人과 꽃)
「걸인과 꽃」은 최지원이 1939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종이에 목판화로, 크기는 세로 62.5㎝, 가로 47.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인으로는 목판화로 처음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꽃을 든 걸인이 항아리를 이고 지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을 음각과 양각의 교차로 공간을 분할하고 굵은 선의 강약을 살려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걸인과 꽃」은 공적 공간에 전시되는 감상의 대상이자 개인의 내적 표현언어로서의 판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최지원의 판화작업은 이후 주호회 작가들을 통해 한국 현대판화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미술가로서 「공판」 · 「경전차고에서」 · 「싸우는 농민」 등의 작품을 그린 미술인이다. 1925년 8월에 출범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하 프로예맹 약칭)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7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이상대, 강호, 추민, 이상춘, 임화 등과 함께 전단과 벽보 제작을 지원하였다. 1930년에 귀국하여 수원 프로미술전을 주도적으로 개최하였으며 1931년부터 프로예맹 미술부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투옥후 병이 들어 1941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정하보 (鄭河普)
일제강점기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미술가로서 「공판」 · 「경전차고에서」 · 「싸우는 농민」 등의 작품을 그린 미술인이다. 1925년 8월에 출범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하 프로예맹 약칭)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7년 평양고무공장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이상대, 강호, 추민, 이상춘, 임화 등과 함께 전단과 벽보 제작을 지원하였다. 1930년에 귀국하여 수원 프로미술전을 주도적으로 개최하였으며 1931년부터 프로예맹 미술부 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투옥후 병이 들어 1941년에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