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극겸"
검색결과 총 11건
고려 전기에, 직문하성, 서북면병마사, 우산기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익 (文翼)
고려 전기에, 직문하성, 서북면병마사, 우산기상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상장군, 동북면병마사, 서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석린 (石隣)
고려후기 상장군, 동북면병마사, 서북면병마사 등을 역임한 무신.
문공유는 고려 전기에 충주목부사, 예부상서,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문공인의 동생이고, 문극겸의 아버지이다. 그는 이자겸의 집권기에 정치적인 배척을 받았다가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 복직하였다. 문장이 활달하고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묘지명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유물인 청자다완(靑瓷茶碗)이 묘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한다.
문공유 (文公裕)
문공유는 고려 전기에 충주목부사, 예부상서,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문공인의 동생이고, 문극겸의 아버지이다. 그는 이자겸의 집권기에 정치적인 배척을 받았다가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 복직하였다. 문장이 활달하고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묘지명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유물인 청자다완(靑瓷茶碗)이 묘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한다.
고려 후기에,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유필 (文惟弼)
고려 후기에,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판예부사,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때, 중서시랑평장사,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최당 (崔讜)
고려시대 때, 중서시랑평장사, 동중서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관노 출신의 환관.
백선연 (白善淵)
고려후기 관노 출신의 환관.
고려 후기에, 우간의대부, 좌간의대부, 판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신윤 (金莘尹)
고려 후기에, 우간의대부, 좌간의대부, 판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간원지 (叩諫院址)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려 전기에, 급사중, 동북면병마부사, 수사공 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박육화 (朴育和)
고려 전기에, 급사중, 동북면병마부사, 수사공 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내시사령을 역임한 문신. 점술가(占術家).
영의 (榮儀)
고려전기 내시사령을 역임한 문신. 점술가(占術家).
염신약은 고려 후기 이부상서, 한림학사 승지,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광주장서기, 첨사부녹사가 되었으며, 명종 때 국자시를 주관하고, 동지공거가 되어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후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추밀원부사, 한림학사 승지가 되었다. 조위총의 난 당시 대금외교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192년(명종 22)에 정당문학으로 치사하였고 이해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문이다.
염신약 (廉信若)
염신약은 고려 후기 이부상서, 한림학사 승지,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광주장서기, 첨사부녹사가 되었으며, 명종 때 국자시를 주관하고, 동지공거가 되어 인재를 선발하였다. 이후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추밀원부사, 한림학사 승지가 되었다. 조위총의 난 당시 대금외교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192년(명종 22)에 정당문학으로 치사하였고 이해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