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남경(南京: 지금의 서울)의 관노(官奴)였는데, 의종(毅宗)이 남경에 행차하였을 때 만나 양자가 되었다. 의종의 총애를 받던 관비(官婢) 출신의 궁인 무비(無比)와 친해져 추문이 있었으며, 환관 왕광취(王光就)와 함께 왕의 침실을 드나들며 권세를 부렸다.
자기에게 아첨하는 무리를 천거하여 내시에 등용하게 하고, 왕으로 하여금 예성강(禮成江)에 나가 즐기도록 하는 등 나라의 기강을 문란하게 하였다. 이에 좌정언 문극겸(文克謙)이 백선연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도리어 문극겸이 왕으로부터 노여움을 사서 황주판관(黃州判官)으로 좌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