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벽돌방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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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고분은 고대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에서 조성되었던 무덤이다. 대동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고분으로 널무덤[木棺墓]와 덧널무덤[木槨墓], 벽돌방무덤[塼室墓] 등이 있다. 특히 평양 근교 토성리에는 1,300여 개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같은 시기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의 묘제와는 현저히 다른 특징을 보이며 중국 한나라 문화를 대변하는 고분이다. 토기·동기·철기·도기(陶器)·옥기(玉器)·목기(木器)·칠기(漆器)·장신구·문방구·인(印)·명기(明器) 등 다양한 껴묻거리가 발굴되었다.
낙랑고분 (樂浪古墳)
낙랑고분은 고대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에서 조성되었던 무덤이다. 대동강 유역에서 확인되는 고분으로 널무덤[木棺墓]와 덧널무덤[木槨墓], 벽돌방무덤[塼室墓] 등이 있다. 특히 평양 근교 토성리에는 1,300여 개의 고분이 산재해 있다. 같은 시기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들의 묘제와는 현저히 다른 특징을 보이며 중국 한나라 문화를 대변하는 고분이다. 토기·동기·철기·도기(陶器)·옥기(玉器)·목기(木器)·칠기(漆器)·장신구·문방구·인(印)·명기(明器) 등 다양한 껴묻거리가 발굴되었다.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장무이 묘 (張撫夷 墓)
장무이묘(張撫夷墓)는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대방군 태수 장무이의 벽돌방무덤이다. 봉산군에서 문자벽돌이 채집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도총이라고 불리던 무덤에 대하여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1911년 최초로 조사를 실시하었다. 부장 유물은 이미 도굴되어 거의 남지 않았는데, 문자벽돌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장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장자는 낙랑 · 대방군의 멸망과 함께 망명하여 허호를 받은 중국계 인물로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무이묘는 고구려에 의해 4세기 중엽경에 축조된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