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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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가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신민회, 신흥강습소, 한국독립당 등을 조직하였고, 해방 이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사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시영 (李始榮)
일제강점기 때, 가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신민회, 신흥강습소, 한국독립당 등을 조직하였고, 해방 이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사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함태영은 일제강점기 교회세력을 배경으로 3·1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이다. 1873년 함경북도 무산 출생으로 교회세력을 배경으로 3·1운동을 막후에서 이끌었다. 3·1운동의 주동인물로 잡혀 1920년 10월 경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고문을 지냈고, 1946년 미군정의 자문기관이었던 민주의원의 의원을 지냈다. 1952년 발췌개헌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어 1956년까지 재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으며,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함태영 (咸台永)
함태영은 일제강점기 교회세력을 배경으로 3·1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이다. 1873년 함경북도 무산 출생으로 교회세력을 배경으로 3·1운동을 막후에서 이끌었다. 3·1운동의 주동인물로 잡혀 1920년 10월 경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고문을 지냈고, 1946년 미군정의 자문기관이었던 민주의원의 의원을 지냈다. 1952년 발췌개헌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제3대 부통령에 당선되어 1956년까지 재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으며,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해방 이후 육군헌병총사령부 부사령관,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경찰.
김종원 (金宗元)
해방 이후 육군헌병총사령부 부사령관,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경찰.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
이익흥 (李益興)
이익흥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16특사로 석방된 경찰·군인·정치인이다. 190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이다. 일본 큐슈제국대학교, 도쿄대학교 대학원 등을 다녔다. 일제 하에서 경찰서장을 지내다가 해방 후 경기도 경찰청장, 서울시 경찰국장,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의 배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후 평화통일정책자문회 상임위원 등으로 위촉되어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방위포장, 충무무공훈장, 청조소성훈장, 동엽 자유훈장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