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울_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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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은 일제강점기, 감리교회 목사이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Christian Church)의 1세대 지도자이다. 주로 종로 기독교 청년회와 여러 감리교회에서 설교하였으며, 『동아일보』와 감리교 협성신학교의 학술지인 『신학세계』에 글을 기고하였다. 1937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還元運動)을 전개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교단을 옮겨 돈암정 교회를 개척하는 등 그리스도의 교회 1세대 목회자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 아놀드 장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으며,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최상현 (崔相鉉)
최상현은 일제강점기, 감리교회 목사이자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Christian Church)의 1세대 지도자이다. 주로 종로 기독교 청년회와 여러 감리교회에서 설교하였으며, 『동아일보』와 감리교 협성신학교의 학술지인 『신학세계』에 글을 기고하였다. 1937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還元運動)을 전개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교단을 옮겨 돈암정 교회를 개척하는 등 그리스도의 교회 1세대 목회자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미군정청 아놀드 장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으며,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구낙서는 일제강점기,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3 · 1운동 당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크게 자극을 받았다. 만세운동 열기는 지방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은 3월 하순에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3월 27일 야간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미행하던 일본 경찰에 의해 사망하였다. 구낙서의 참혹한 죽음은 선교사에 의해 알려져 일제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폭력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게 된 사건이 되었다.
구낙서 (具洛書)
구낙서는 일제강점기,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3 · 1운동 당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크게 자극을 받았다. 만세운동 열기는 지방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은 3월 하순에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3월 27일 야간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에 참가한 후, 미행하던 일본 경찰에 의해 사망하였다. 구낙서의 참혹한 죽음은 선교사에 의해 알려져 일제의 야만적이고 잔인한 폭력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게 된 사건이 되었다.
남위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9월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동료들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 군중을 이끌었다. 특히 3월 5일 남대문역 앞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19년 11월 21일에 사망하였다.
남위 (南偉)
남위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9월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동료들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 군중을 이끌었다. 특히 3월 5일 남대문역 앞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19년 11월 21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