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위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00년 9월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났다. 보성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동료들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 군중을 이끌었다. 특히 3월 5일 남대문역 앞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19년 11월 21일에 사망하였다.
1900년 9월 25일 함경남도 홍원군 용천면 동평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마친 후, 서울로 유학하여 3 · 1운동 당시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을 비롯한 평양, 정주, 의주, 원산 등지에서 3 · 1운동의 신호탄이 올렸다. 남위는 학생 대표로 학생들과 함께 탑골공원에 집결하여 독립선언서의 낭독이 끝난 후 군중과 함께 시내를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여러 대로 나누어 한 일대는 종로, 광교, 경성부청 앞, 남대문 등을 거쳐 프랑스공사관 앞으로 행진하였다. 다른 일대는 종로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을지로로 향하였다. 이외에도 창덕궁, 조선보병사령부, 세종로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앞 광장에는 약 1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남위는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많은 고문을 받았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11일만인 1919년 11월 21일 서울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