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때, 학생 대표로서 3·1운동에 참가해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시위대는 여러 대로 나누어 한 일대는 종로, 광교, 경성부청 앞, 남대문 등을 거쳐 프랑스공사관 앞으로 행진하였다. 다른 일대는 종로에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후, 을지로로 향하였다. 이외에도 창덕궁, 조선보병사령부, 세종로 등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 앞 광장에는 약 1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남위는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많은 고문을 받았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11일만인 1919년 11월 21일 서울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김정인 · 이정은, 『국내 3 · 운동Ⅰ-중부 · 북부』(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국가보훈처, 1971)
- 『한국독립운동사』 2(국사편찬위원회, 1966)
주석
-
주1
: 1919년 만세시위 당시 ‘서울역’은 ‘남대문역’이었고 염천교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서울역 구청사와 염천교 사이 중간쯤이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