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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유집』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때 학자인 강용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928년에 간행하였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무산집(武山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무산유집(武山遺集)’이다.
무산유집 (武山遺集)
『무산유집』은 조선 후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때 학자인 강용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1928년에 간행하였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으로, 표제는 ‘무산집(武山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무산유집(武山遺集)’이다.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전유경 (全有慶)
조선 후기에 『각암집』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1605년 4월 12일 대구부 수성현(壽城縣) 파잠리(巴岑里) 집에서 출생하였다. 서인계 학자로 김장생(金長生)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송시열(宋時烈)·이유태(李惟泰) 등과 교유하였다. 1642년 모친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다가 역병에 걸려서 이듬해 정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오언고시 5수, 오언절구 6수, 오언율시 9수, 칠언절구 23수, 칠언율시 14수가 문집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잡저에 「대학집해(大學集解)」가 있는데, 팔조목을 해설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광정 (李光靖)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