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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년(공양왕 4)에 사망했다.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와 왜에 직접 사절로 가는 등 담대한 외교가로서 활약했다. 성균관의 사성으로서 신진 사류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기울어가는 고려 국운을 바로잡고자 국가기강 정비와 민생 안정에 노력했다.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날로 높아지고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들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살해당했다.
정몽주 (鄭夢周)
정몽주는 고려후기 문하찬성사, 예문관제학, 인물추변도감제조관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태어나 1392년(공양왕 4)에 사망했다. 고려말 친원파가 득세하던 상황에서 신진사류로서 친명정책을 주장했고, 명와 왜에 직접 사절로 가는 등 담대한 외교가로서 활약했다. 성균관의 사성으로서 신진 사류를 양성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기울어가는 고려 국운을 바로잡고자 국가기강 정비와 민생 안정에 노력했다. 이성계의 위세와 명망이 날로 높아지고 그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이들을 제거하려다가 역으로 살해당했다.
강창(江倉)은 곡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강이나 하천 인근에 설치한 창고를 의미한다. 곡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다량의 곡물은 보통 선박을 통해 운송되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왕조는 수로 교통의 중심지에 강창을 설치하고, 곡물을 보관하고 유통했다. 일반적으로 강창은 국가가 세곡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뜻하지만, 지방 군현에서도 세곡을 보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강변에 설치한 창고도 강창이라 불렀다. 또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진휼곡, 유사시 군사들의 식량인 군량미 등을 보관하기 위한 강창도 존재하였다.
강창 (江倉)
강창(江倉)은 곡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강이나 하천 인근에 설치한 창고를 의미한다. 곡물은 무게가 많이 나가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다량의 곡물은 보통 선박을 통해 운송되었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왕조는 수로 교통의 중심지에 강창을 설치하고, 곡물을 보관하고 유통했다. 일반적으로 강창은 국가가 세곡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뜻하지만, 지방 군현에서도 세곡을 보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강변에 설치한 창고도 강창이라 불렀다. 또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진휼곡, 유사시 군사들의 식량인 군량미 등을 보관하기 위한 강창도 존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