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남만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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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신사척사론 (辛巳斥邪論)
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사헌부장령,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남만인소」를 지어 사학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된 문신.
강진규 (姜晉奎)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사헌부장령,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남만인소」를 지어 사학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된 문신.
조선 후기에, 영해부사, 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만유 (李晩由)
조선 후기에, 영해부사, 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