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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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는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실의 의궤이다.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의 도서가 약탈되었다. 이후 1세기 가량 방치되어 있던 의궤는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에 의해 발견되어 지금은 영구임대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이라는 점과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외규장각의궤 (外奎章閣儀軌)
외규장각 의궤는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실의 의궤이다.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권의 도서가 약탈되었다. 이후 1세기 가량 방치되어 있던 의궤는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박병선에 의해 발견되어 지금은 영구임대 형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이라는 점과 국내외에 한 점밖에 없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조선후기 외규장각의 설치와 운영에 대한 내용을 수록한 등록.
전교질 (傳敎秩)
조선후기 외규장각의 설치와 운영에 대한 내용을 수록한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