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용정_3·13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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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흡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 후반 길림성 연길현 명월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대형 깃발을 들고 수많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공덕흡 (孔德洽)
공덕흡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 후반 길림성 연길현 명월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대형 깃발을 들고 수많은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병영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연길현 명동학교에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부근의 제창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3월 하순에 순국하였다.
김병영 (金炳榮)
김병영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연길현 명동학교에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쓰러졌다. 부근의 제창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3월 하순에 순국하였다.
김승록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봉림동 남구에 거주하며 학교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승록 (金承祿)
김승록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봉림동 남구에 거주하며 학교에 재학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여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종묵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길림성 연길현 구승하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이 대거 참여한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가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사격으로 총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순국하였다.
김종묵 (金鍾默)
김종묵은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길림성 연길현 구승하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이 대거 참여한 시위대의 선두에 섰다가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사격으로 총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순국하였다.
김태균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태균 (金泰均)
김태균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현 의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연변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흥식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서울에 거주하다가 상업차 중국 연변의 용정을 방문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적극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흥식 (金興植)
김흥식은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서울에 거주하다가 상업차 중국 연변의 용정을 방문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의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한인 학생과 교직원, 군중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이를 적극 제지하던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문호는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평강의 남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형 깃발의 기수로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들이 대거 참가한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문호 (朴文浩)
박문호는 일제강점기, 중국 연변 용정에서 일어난 3 · 13항일시위운동에 앞장선 독립운동가이다. 길림성 평강의 남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개된 용정 3 · 13항일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형 깃발의 기수로 한인 학생과 교직원, 일반 군중들이 대거 참가한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본영사관으로 행진 중에 중국 군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