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위정척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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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도서기론은 1880년대 김윤식·신기선 등이 동양의 유가적인 도와 제도를 유지하면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과 기술을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이 이론은 유학의 전통적 인륜 도덕으로 삼강오륜과 인의예지와 예악형정을 도로 간주하고, 서양의 물질문명적 요소로서 형기를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동도서기론은 대한제국이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면서 서양의 기뿐 아니라 민주주의 개념, 제도, 문화, 사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명나라 이후의 중화사상을 계승한 소중화 의식이 붕괴하고 동도서기론도 함께 퇴색하게 되었다.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
동도서기론은 1880년대 김윤식·신기선 등이 동양의 유가적인 도와 제도를 유지하면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과 기술을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이 이론은 유학의 전통적 인륜 도덕으로 삼강오륜과 인의예지와 예악형정을 도로 간주하고, 서양의 물질문명적 요소로서 형기를 수용하고자 한 사상이다. 동도서기론은 대한제국이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면서 서양의 기뿐 아니라 민주주의 개념, 제도, 문화, 사상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명나라 이후의 중화사상을 계승한 소중화 의식이 붕괴하고 동도서기론도 함께 퇴색하게 되었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신사척사론 (辛巳斥邪論)
신사척사론은 1881년 척사상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위정척사운동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에 신사년(1881)에 개화파에 대항하기 위하여 제시된 사상이다. 일본과의 접촉으로 정부 내부에 개화사상이 침투하여 친일적인 개화파가 형성되었다. 정부에서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복사하여 배포하자, 이를 계기로 위정척사론자의 척사 상소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척사상소는 경상도 이만손 등이 올린 영남만인소이다.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민족적 위기상황 속에서 민족자존을 위한 주체적인 민족의식과 애국우국정신의 발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