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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필담』은 1873년에 서유영이 보고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문 야담집이다. 내용은 사대부 계층의 일화가 주를 이룬다. 전대의 문헌 기록이나 민간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나 이전의 문헌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편찬 의도에 따라 사실성과 윤리성이 강조되었다.
금계필담 (錦溪筆談)
『금계필담』은 1873년에 서유영이 보고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기록한 한문 야담집이다. 내용은 사대부 계층의 일화가 주를 이룬다. 전대의 문헌 기록이나 민간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나 이전의 문헌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저자의 편찬 의도에 따라 사실성과 윤리성이 강조되었다.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서유영 (徐有英)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선우태자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불교의 본생담을 기원으로 하여 변형된 것으로, 형제 갈등, 선악 경쟁, 탐색 모티프 등 대중적인 이야기가 되기 위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 「적성의전」·「육미당기」 등 조선 후기 소설 창작의 원천으로 지목된 바 있다.
선우태자전 (善友太子傳)
「선우태자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불교의 본생담을 기원으로 하여 변형된 것으로, 형제 갈등, 선악 경쟁, 탐색 모티프 등 대중적인 이야기가 되기 위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 「적성의전」·「육미당기」 등 조선 후기 소설 창작의 원천으로 지목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