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주_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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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유여대 (劉如大)
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김석운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약 3,000~4,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군중들은 맞서 싸워 헌병주재소 건물과 헌병 숙소 등을 파괴하였다.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김석운은 현장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석운 (金碩運)
김석운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약 3,000~4,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군중들은 맞서 싸워 헌병주재소 건물과 헌병 숙소 등을 파괴하였다.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김석운은 현장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