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자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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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약은 조선 후기 자명종 등을 개발한 기술자이다. 경상도 동래부 출신으로 옥인(玉印) 조성, 천문의기, 자명종, 침구동인(鍼灸銅人) 등의 다양한 것을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공로로 첨사와 별장 등에 임명되었고, 품계는 가의대부와 자헌대부에 올랐는데, ‘그의 재주는 수백 년 이래 다시 구할 수 없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기술자이자 관인이었다. 출생은 1683년(숙종 9) 정도로 추정되고, 1755년(영조 31)에 생을 마감하였다.
최천약 (崔天若)
최천약은 조선 후기 자명종 등을 개발한 기술자이다. 경상도 동래부 출신으로 옥인(玉印) 조성, 천문의기, 자명종, 침구동인(鍼灸銅人) 등의 다양한 것을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공로로 첨사와 별장 등에 임명되었고, 품계는 가의대부와 자헌대부에 올랐는데, ‘그의 재주는 수백 년 이래 다시 구할 수 없다.’라고 할 만큼 뛰어난 기술자이자 관인이었다. 출생은 1683년(숙종 9) 정도로 추정되고, 1755년(영조 31)에 생을 마감하였다.
유흥발(劉興發)은 조선 중기 17세기 중엽 경상도 밀양에서 활동한 장인(匠人)이다. 그는 일본에서 제작된 자명종을 얻어 그 구조와 작동을 터득한 뒤, 직접 자명종을 제작하였다. 유흥발이 만든 자명종은 조선에서 서양식 기계 시계를 스스로 제작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이다.
유흥발 (劉興發)
유흥발(劉興發)은 조선 중기 17세기 중엽 경상도 밀양에서 활동한 장인(匠人)이다. 그는 일본에서 제작된 자명종을 얻어 그 구조와 작동을 터득한 뒤, 직접 자명종을 제작하였다. 유흥발이 만든 자명종은 조선에서 서양식 기계 시계를 스스로 제작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