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미술가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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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해질녘」·「호수」·「친구의 초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관호 (金觀鎬)
일제강점기 「해질녘」·「호수」·「친구의 초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쾌대 (李快大)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해금강 총석정」·「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7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모필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40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운성회화연구소를 운영했다. 1950년에 월북했다.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배운성 (裵雲成)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해금강 총석정」·「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7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모필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40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운성회화연구소를 운영했다. 1950년에 월북했다.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문학수는 북한에서 평양예술문화협회 미술부장,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화가·교육자이다. 1932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자유미술가협회 활동에 참가하였다. 1941년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1944년 귀국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로 전향한다. 1953년 제작한 유화는 평양 개선광장의 벽화로도 제작되었다. 1964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김일성 표창도 수상하는 등 훌륭한 교육자이자 북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1971년 일반작가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문학수 (文學洙)
문학수는 북한에서 평양예술문화협회 미술부장,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화가·교육자이다. 1932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자유미술가협회 활동에 참가하였다. 1941년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였다. 1944년 귀국 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로 전향한다. 1953년 제작한 유화는 평양 개선광장의 벽화로도 제작되었다. 1964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김일성 표창도 수상하는 등 훌륭한 교육자이자 북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1971년 일반작가 신분으로 강등되었다.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조선미술동맹 (朝鮮美術同盟)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1946년에 결성되어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조선조형미술동맹 (朝鮮造形美術同盟)
1946년에 결성되어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엄도만 (嚴道晩)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정물」, 「천단」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박진명 (朴振明)
일제강점기 「정물」, 「천단」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