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황지"
검색결과 총 2건
진전(陳田)은 양안에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는 토지이다. 진전에 대한 부세 수취와 개간은 국가와 농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조선 후기 정부는 진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진전 개간을 장려하기 위해 진전의 전품을 낮추어 주거나 사실상의 면세 혜택을 마련하였다.
진전 (陳田)
진전(陳田)은 양안에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하지 않는 토지이다. 진전에 대한 부세 수취와 개간은 국가와 농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조선 후기 정부는 진전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진전 개간을 장려하기 위해 진전의 전품을 낮추어 주거나 사실상의 면세 혜택을 마련하였다.
강등전은 조선 후기, 정전(正田)이었으나 더 이상 경작하지 않는 토지의 등급을 낮추어 개간을 권장한 토지이다. 1720년(숙종 46) 경자양전(庚子量田) 이후 양전의 효율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어 진황지(陳荒地)만 조사하는 방식이 확대되었다. 이때 조사의 대상이 된 진황지로 토지 등급이 높게 평가된 것은 1~2등씩 낮춰줌으로써 백성들이 부세 부담을 덜고 경작에 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강등전 (降等田)
강등전은 조선 후기, 정전(正田)이었으나 더 이상 경작하지 않는 토지의 등급을 낮추어 개간을 권장한 토지이다. 1720년(숙종 46) 경자양전(庚子量田) 이후 양전의 효율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되어 진황지(陳荒地)만 조사하는 방식이 확대되었다. 이때 조사의 대상이 된 진황지로 토지 등급이 높게 평가된 것은 1~2등씩 낮춰줌으로써 백성들이 부세 부담을 덜고 경작에 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