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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성입보책 (山城入保策)
산성입보책은 고려 정부가 몽고침입에 대응하여 지방 군현민을 험준한 산성으로 입보시킨 정책이다. 몽골 침입 이전에는 외적이 침입해 오면 군현의 치소가 있는 성에 들어가서 대응하였다. 대몽항전을 위한 전략으로 치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성을 입보처로 선택하였다. 강화를 체결한 이후로도 몽고에 대항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지방관 통솔 하에 입보하였는데 산성방호별감, 산성겸권농별감 등이 파견되어 입보민을 지휘 통제하였다. 지역 방어 방식이 개별적 군현의 치소성에서 복수의 군현을 포괄하는 광역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차산일대보루군(阿且山一帶堡壘群)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구리시 경계인 아차산 일대에 있는 고구려의 보루군이다. 29개소가 확인되었고, 능선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6세기에 고구려가 축조, 운영하였고, 고구려의 후퇴 후에는 신라가 일부 재사용하였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 (阿且山 一帶 堡壘群)
아차산일대보루군(阿且山一帶堡壘群)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구리시 경계인 아차산 일대에 있는 고구려의 보루군이다. 29개소가 확인되었고, 능선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6세기에 고구려가 축조, 운영하였고, 고구려의 후퇴 후에는 신라가 일부 재사용하였다.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대국산성 (大局山城)
대국산성은 남해 대국산(大局山: 370m)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석축 산성이다. 대국산 정상부에서 능선을 따라 먼저 쌓아 올려진 석축성과 동쪽 비탈면으로 석축성에 덧대어 산 중턱까지 연결하여 쌓은 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축 산성은 가늘고 긴 성돌로 바른층 쌓기를 하였으며, 보축 성벽과 현문식 문지를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축 산성이다. 토성은 기단식 판축 토성으로 덧붙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신라 전야산군의 치소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과 사천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 도서 지역이 넓게 조망되는 요충지이다.
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사이에 있는 백제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노성산은 해발 348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산성의 북벽이 노성산의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북고남저, 삼태기식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894m이고,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성을 쌓았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3개소와 건물지, 우물지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도 있다. 이 산성을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논산 노성산성 (論山 魯城山城)
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사이에 있는 백제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노성산은 해발 348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산성의 북벽이 노성산의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북고남저, 삼태기식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894m이고,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성을 쌓았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3개소와 건물지, 우물지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도 있다. 이 산성을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영흥소라리유적은 함경남도 금야군에 있는 화려현의 치소로 추정되는 토성과 집터 · 무덤 등이 포함된 복합유적이다. 일제강점기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으며, 광복 이후 북한에서 몇 차례 조사한 바가 있다. 다수의 낙랑계 청동 제품과 철 제품이 출토되었으며, 유물로는 세형동검의 검파두식과 동촉, 철부, 마구류 등의 철 제품이 확인된다. 영흥소라리유적은 한국식 동검 문화의 기반 위에 철기 문화와 중국 한대 문화의 복합된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흥 소라리 유적 (永興 所羅里 遺蹟)
영흥소라리유적은 함경남도 금야군에 있는 화려현의 치소로 추정되는 토성과 집터 · 무덤 등이 포함된 복합유적이다. 일제강점기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처음 조사되었으며, 광복 이후 북한에서 몇 차례 조사한 바가 있다. 다수의 낙랑계 청동 제품과 철 제품이 출토되었으며, 유물로는 세형동검의 검파두식과 동촉, 철부, 마구류 등의 철 제품이 확인된다. 영흥소라리유적은 한국식 동검 문화의 기반 위에 철기 문화와 중국 한대 문화의 복합된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