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6년(우왕 2)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양광·전라도체찰사에 임명되어, 장수·수령들이 방어하는 근태를 살피고 돌아와 전라도원수 하을지가 정해진 인원 이상으로 연호군과 별군을 뽑자, 이를 보고하여 이를 폐지하고 여기에 소속된 군사들은 귀농시켰다.
우왕은 새로 뽑은 연호군과 별군의 원수를 유영으로 교체하였다. 1383년 왜구가 김화현(金化縣)에 침입한 뒤 평강현을 함락시키자 남좌시(南佐時)·안소(安紹) 등과 함께 이를 쳤으나 김화에서 패전하였다.
그 뒤 1388년 왜구가 다시 양광도 부근의 40여 군에 침입하여 유린한다는 양광도안렴사 전리(田里)의 보고가 있자, 도흥(都興)·김주(金湊)·조준(趙浚)·김종연(金宗衍) 등과 함께 가서 방어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사에 연루되어서 하옥되었다. 1394년 성문(城門) 건축의 감독을 잘 하지 못한 것으로 대간과 형조의 탄핵을 받았지만 처벌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