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할아버지는 서장관을 지낸 곽인(郭麟)이다. 아버지는 판도정랑(版圖正郞) 곽지태(郭之泰)이다.
1341년 김광재(金光載)가 주관한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한림에 제수되었다. 1348년(충목왕 4)에 헌납 원송수(元松壽)와 찬성사 정천기(鄭天起)가 관리임명장도 받지 않고서 정방에 들어가 인물을 평정하고, 또한 창기와 가까이 함을 탄핵하여 관직을 박탈 당하였다.
그 뒤 1352년(공민왕 1)에 지평으로 감찰집의(監察執義) 김규(金㺩)와 함께 조일신(趙日新)을 탄핵하였다.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하자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할 때 당시 형부시랑으로 어가를 호종하였다. 관계(官階)는 통헌대부에 이르렀다. 일찍이 추동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영모정(永慕亭)이라 하였는데, 동쪽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생각하여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