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입견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고려후기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양평(良平)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396년(태조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판밀직사사|참지문하부사|참찬문하부사
  • 출생 연도1340년(충혜왕 복위 1)
  • 출생지복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선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복산(福山) 사람으로, 아버지는 원나라의 순방만호(巡訪萬戶)를 지낸 김어진(金於珍)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로 피난할 때, 대호군으로 어가를 호종한 공이 있어 1363년(공민왕 12)에 2등공신이 되었다.

1371년에 왜구가 예성강에서 병선 40여 척을 태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장형(杖刑)을 받고 안산(安山)으로 유배되었다. 1383년(우왕 9)에 원수가 되어, 평창·원주·영주·순흥·횡천 등지에서 왜구행세를 하며 약탈을 하던 화척(禾尺)·재인(才人) 등 50여 명을 죽였다.

또 홍천현을 침입한 왜적을 물리쳤으며, 1388년 왜구의 침입이 점점 심해지자 왕의 명령으로 한양에 가서 세자와 비(妃)들을 호위하였고, 1391년(공양왕 3)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명나라에 가서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1392년(태조 1) 조선이 개국되자,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를 거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평(良平)이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