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생들에 의한 배불론이 일어나 유교와 불교가 심각하게 대립하자 1391년(공양왕 3) 왕에게 글을 올려 태조 이래 고려의 창업은 사원을 세우고 불상을 만들어 불교를 장려한 때문이라고 불교옹호론을 주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일부 승려들에 의해서 자행된 타락행위와 불법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시정을 촉구하여 참된 불법을 수행하여야 함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뒤에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에 의해서 부처에 아첨하고 왕을 미혹한다 하여 탄핵을 당하였고, 또 성균생원 박초(朴礎) 등으로부터 통렬한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