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휘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도안무사 겸 부원수, 서북면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견미의 반역사건
  • 사망 연도1388년(우왕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양광전라경상도조존원수|도안무사 겸 부원수|서북면도순찰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선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도안무사 겸 부원수, 서북면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72년(공민왕 21) 상호군(上護軍)이 되었으며, 1379년(우왕 5)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자 양광전라경상도조전원수(楊廣全羅慶尙道助戰元帥)가 되어 왜구격퇴에 힘썼다.

같은 해 5월에 왜구가 다시 기병(騎兵) 7백, 보병 2천 명으로 진주에 침입하자 도순문사(都巡問使)로서 양백연(楊伯淵)·우인열(禹仁烈) 등과 함께 반성현(班城縣)에서 싸워 크게 승리하고 적 13명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이듬해 왜구가 다시 광주(光州) 및 능성·화순 등을 침범하자 원수로서 이를 방어하였다. 또, 8월에는 왜구가 사근내역(沙斤乃驛)에 진을 치자 지용기(池湧奇)·정지(鄭地)·도흥(都興)·하을지(河乙沚) 등과 함께 적을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죽은 군사가 5백여 명이나 되었으며 왜구는 함양까지 침입하였다.

1382년 도안무사 겸 부원수(都安撫使兼副元帥)에 임명되어 정요위(定遼衛)의 군사를 대비시켰고, 다음 해 명나라가 고려에 대해 자기들을 섬기는 것이 성실하지 못하다 하여 자주 변경을 침범하여 왔으므로 서북면도순찰사(西北面都巡察使)에 임명되어 이를 방어하였다. 1388년 임견미(林堅味)의 반역사건에 연좌되어 참형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