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칠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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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랑(公廊)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던 시전 상인이 물품을 판매하던 공간이다. 공랑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방 1개는 1평 남짓의 작은 크기였다. 조선의 중앙정부는 도성민들에게 공랑을 조성해 주고, 그 대가로 공랑세(公廊稅)라는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17세기부터는 공랑세를 더 이상 징수하지 않고 대신 시전 상인을 잡역에 동원하였다.
공랑 (公廊)
공랑(公廊)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던 시전 상인이 물품을 판매하던 공간이다. 공랑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는데, 방 1개는 1평 남짓의 작은 크기였다. 조선의 중앙정부는 도성민들에게 공랑을 조성해 주고, 그 대가로 공랑세(公廊稅)라는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17세기부터는 공랑세를 더 이상 징수하지 않고 대신 시전 상인을 잡역에 동원하였다.
장행랑(長行廊)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시전(市廛) 거리이다. 조선 초기 태종 대에 서울에 시전 거리 조성 사업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후 양난의 여파로 축소된 시전 거리는 17세기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상업 거래는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는데, 이에 따라 도성 안팎에는 기존의 종루 시전 외에 칠패(七牌)와 이현(梨峴) 시장이 형성되었다.
장행랑 (長行廊)
장행랑(長行廊)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시전(市廛) 거리이다. 조선 초기 태종 대에 서울에 시전 거리 조성 사업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후 양난의 여파로 축소된 시전 거리는 17세기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상업 거래는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는데, 이에 따라 도성 안팎에는 기존의 종루 시전 외에 칠패(七牌)와 이현(梨峴) 시장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