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4·13호헌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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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대규모 시민 항쟁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기획한 6·10국민대회를 기점으로 시작된 유월항쟁 당시 전국 곳곳에서 매일 평균 100회 이상의 시위가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유월항쟁에 참가한 연인원은 400~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29일 6 · 29민주화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직선제 개헌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6월항쟁 (六月抗爭)
유월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대규모 시민 항쟁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기획한 6·10국민대회를 기점으로 시작된 유월항쟁 당시 전국 곳곳에서 매일 평균 100회 이상의 시위가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유월항쟁에 참가한 연인원은 400~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29일 6 · 29민주화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직선제 개헌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개헌서명운동(改憲署名運動)은 1986년에 신한민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주도로 전개된 대통령직선제 개헌 추진 운동이다. 1985년 2 · 12총선 승리로 제1야당이 된 신한민주당은 민주화추진협의회과 함께 1986년부터 1천만 개헌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개헌추진위원회 결성대회 및 현판식이 진행되었고,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공개서명 및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와 여당도 한발 물러서 국회 개헌특위 설치에 합의하였지만, 여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결국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가 나왔다.
개헌서명운동 (改憲署名運動)
개헌서명운동(改憲署名運動)은 1986년에 신한민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주도로 전개된 대통령직선제 개헌 추진 운동이다. 1985년 2 · 12총선 승리로 제1야당이 된 신한민주당은 민주화추진협의회과 함께 1986년부터 1천만 개헌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개헌추진위원회 결성대회 및 현판식이 진행되었고,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공개서명 및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와 여당도 한발 물러서 국회 개헌특위 설치에 합의하였지만, 여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결국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