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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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은 대한제국기 내부대신, 군법교정총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861년(철종 12)에 태어나 1905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대사성 재직시 임오군란으로 부친 민겸호가 살해되자 사직했다가 복직했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 특명 전권공사, 유럽 6개국 특명 전권공사를 지내며 서양의 문물과 근대화된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독립협회를 적극 지지했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면서 한직을 전전했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형과 조약파기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이어 죽음으로 항거하여 국민을 각성시킬 것을 결심하고 본가에서 자결했다.
민영환 (閔泳煥)
민영환은 대한제국기 내부대신, 군법교정총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861년(철종 12)에 태어나 1905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대사성 재직시 임오군란으로 부친 민겸호가 살해되자 사직했다가 복직했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 특명 전권공사, 유럽 6개국 특명 전권공사를 지내며 서양의 문물과 근대화된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독립협회를 적극 지지했고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면서 한직을 전전했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형과 조약파기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이어 죽음으로 항거하여 국민을 각성시킬 것을 결심하고 본가에서 자결했다.
이원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634년(인조 12)에 사망했다. 1574년(선조 7) 황해도 도사가 되어 병정을 정비했고, 1587년 안주목사로서 기민 구휼과 민생 안정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나자 명장 이여송과 함께 평양을 탈환했고 1595년에는 우의정 겸 4도체찰사로 일했다. 광해군 재위기에 왕에게 올린 직언이 수용되지 않자 병을 이유로 낙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청빈했고 인조로부터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원익 (李元翼)
이원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634년(인조 12)에 사망했다. 1574년(선조 7) 황해도 도사가 되어 병정을 정비했고, 1587년 안주목사로서 기민 구휼과 민생 안정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나자 명장 이여송과 함께 평양을 탈환했고 1595년에는 우의정 겸 4도체찰사로 일했다. 광해군 재위기에 왕에게 올린 직언이 수용되지 않자 병을 이유로 낙향했다. 인조반정 후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청빈했고 인조로부터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항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56년(명종 11)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1583년(선조 16) 사가독서를 했고, 이이의 추천으로 홍문관과 예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와 왕비를 호종했고, 세자의 분조를 보필하여 군무를 맡았으며, 능란한 외교 솜씨로 명의 원군 파병과 양국 사이의 여러 문제를 조정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항복 (李恒福)
이항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예문관 대제학, 병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56년(명종 11)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1583년(선조 16) 사가독서를 했고, 이이의 추천으로 홍문관과 예문관의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1589년 정여립 모반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평난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이 나자 선조와 왕비를 호종했고, 세자의 분조를 보필하여 군무를 맡았으며, 능란한 외교 솜씨로 명의 원군 파병과 양국 사이의 여러 문제를 조정했다. 인목대비 폐위를 반대하다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