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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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북인 (北人)
북인은 조선시대 광해군 대 집권 세력이었던 붕당의 한 정파이다. 동인은 분당 이후 임진왜란 종전까지 20여 년 동안 정국을 주도했는데, 주류는 퇴계학파, 비주류는 남명 · 화담학파였다. 동인 비주류 세력이었던 북인은 1589년 기축옥사 당시 서인으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적극적인 의병 참여와 주전론(主戰論)의 제기를 통해 세력을 키웠다. 광해군을 줄곧 지지했던 이들은 광해군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집권 세력이 되었다.
사민은 근대 이전, 사 · 농 · 공 · 상의 네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평민 계층이다. 고대 중국 이래로 사용되던 용어로, 사인(士人)은 관료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연마한다는 점에서 관인층(官人層)보다는 지위가 낮았지만 평민층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다음 순위는 농민, 그리고 공인, 상인 순이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 아래 전체 인민을 사 · 농 · 공 · 상이라는 네 개의 직업군으로 구분하였고, 그러한 관념 아래 전체 인민을 편제하는 전통이 있었다.
사민 (四民)
사민은 근대 이전, 사 · 농 · 공 · 상의 네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평민 계층이다. 고대 중국 이래로 사용되던 용어로, 사인(士人)은 관료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연마한다는 점에서 관인층(官人層)보다는 지위가 낮았지만 평민층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다음 순위는 농민, 그리고 공인, 상인 순이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 아래 전체 인민을 사 · 농 · 공 · 상이라는 네 개의 직업군으로 구분하였고, 그러한 관념 아래 전체 인민을 편제하는 전통이 있었다.
양인은 근대 이전에 국역을 수행할 의무와 이에 대응되는 권리를 가진 평민 계층이다. 국역을 수행할 수 없는 천인(賤人)에 대조되는 계층이었다.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고대 이래 전체 인민을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는 전통이 있었다. 중국의 율령체제를 국가의 주요 운영 구조로 설정하였던 통일신라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역대 왕조의 통치자들은 국가적 신분규범인 양천제(良賤制)의 기반 아래 양인들을 공민(公民)으로 동원하는 국역체제(國役體制)를 운영하고 유지하였다.
양인 (良人)
양인은 근대 이전에 국역을 수행할 의무와 이에 대응되는 권리를 가진 평민 계층이다. 국역을 수행할 수 없는 천인(賤人)에 대조되는 계층이었다.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고대 이래 전체 인민을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하는 전통이 있었다. 중국의 율령체제를 국가의 주요 운영 구조로 설정하였던 통일신라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역대 왕조의 통치자들은 국가적 신분규범인 양천제(良賤制)의 기반 아래 양인들을 공민(公民)으로 동원하는 국역체제(國役體制)를 운영하고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