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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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
이병길 (李丙吉)
이병길은 일제강점기 강원임업주식회사 취체역, 조선생명징병보험 주식회사 취체역 등을 역임한 경제인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이다. 이완용의 손자로 후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 및 촉탁과 동요회 발기인 겸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와 동아합동목재 주식회사와 강원약업 주식회사 취체역에 취임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의 이사를 역임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12월에 사망했다.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
장직상 (張稷相)
장직상은 일제강점기 경일은행, 동아인촌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이며 관료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3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하양군수, 선산군수 등을 지내다가 1916년에 기업인이 되어 경일은행 등을 설립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였는데 다섯 차례 연임되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이 관리하는 남선전기회사의 사장, 대한생명보험회사 취체역 회장 등을 맡았다. 1949년 반민특위에 자수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1959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