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설례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백제 제17대 아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사망 연도405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경현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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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백제 제17대 아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

개설

아버지는 아신왕이며, 형으로는 전지왕과 부여 훈해(扶餘訓解)가 있으며, 구이신왕의 계부(季父)이다. 405년에 아신왕이 죽자 왕위계승권자인 태자 영(映)이 일본에 볼모로 가 있어 태자 영의 중제(仲弟) 훈해가 섭정을 맡아 태자의 환국을 서둘렀다.

이 때 아신왕의 막내아들 설례는 야심을 품고 군대를 일으켜 섭정자 훈해를 죽이고 백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일본에 가 있던 태자 영은 부왕의 부음을 듣고 왜병 100여명의 호송을 받아 국경에 이르렀다.

왕경(王京) 한성(漢城)사람 해충(解忠)이 태자에게 나아가 왕의 아우 설례가 형인 훈해를 죽이고 왕이 된 사실을 알려주고 태자에게 섬에서 머물면서 기다리기를 청하였다. 그 뒤 설례는 죽음을 당하고 태자 영을 맞아들여 왕으로 삼으니 이가 곧 전지왕이다. 이리하여 설례는 왕위에 즉위하였다가 곧 타도되었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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