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백희(歌舞百戱)
고려시대 문화를 기록한 『고려도경』에는 고려 조정의 악(樂)을 담당한 기관 사람들의 숫자 천여 명을 헤아린 후, 덧붙여 “자지(柘枝: 연화대무), 포구(抛毬: 포구락무) 등의 기예도 있는데, 이들을 담당한 백희인들이 수백명이다.(亦有柘枝·抛毬之藝, 其百戱數百人)”라고 했다. 또 고려시대 의장(儀仗) 행렬에는 금오장위(金吾仗衛)의 다음에 백희를 담당한 어린 아동[小兒]들이 따르고, 그 다음에 악부(樂部)의 사람들이 차례로 따랐다고 한다. 백희를 담당한 아이를 백희해아(百戱孩兒)라고 했다. 또 팔관회와 연등회 때는 “임금 앞에서 백가지 가무를 올렸다.(呈百戱歌舞於前)”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종묘에서 제사지내고 궁으로 돌아가는[환궁(還宮)] 때,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큰 행사 때도 나례와 백희를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