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 197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다리가 놓여 있는 하천을 미하(渼河)라고 부른 데서 다리이름을 미내다리[渼奈橋]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미내라는 승려가 시주를 받아서 만들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연유하였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예전에 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고 해서 조암교(潮巖橋) 또는 미교(渼橋)라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다리는 3개의 홍예(虹霓 : 무지개모양)로 된 돌다리인데 가운데 홍예가 가장 크고 남북쪽의 것이 작다.
받침을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홍예석을 둘렀으며, 가운데 홍예의 종석은 다리난간쪽으로 돌출시켜 호랑이머리를 조각하였다. 북쪽 홍예는 용머리를 새긴 종석이 있고 난간 경계석에는 여러 가지 꽃무늬를 새긴 듯하나 마멸이 심하다.
몇 ㎞ 떨어진 원목다리와 형태는 거의 같으나 이 다리가 더 크고 우람하며 치석(治石)이 정교하다. 다리 앞에는 커다란 암반이 있는데 여기에 원래 화강암제의 은진미교비(恩津渼橋碑)가 있었으나 파괴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중이다.
비문에 의하면 1731년(영조 7) 강경촌에 살던 석설산(石雪山)송만운(宋萬雲) 등이 주동이 되어 황산의 유승업(柳承業)설우(雪遇) · 청원(淸元) 등이 이 공사에 진력하여 시작한 지 1년이 못되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충청도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 중의 하나로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