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윤지(胤之). 첨지중추부사 강주(姜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강백년(姜栢年)이고, 아버지는 예조판서 강현(姜鋧)이며, 어머니는 조위봉(趙威鳳)의 딸이다. 화가로 이름을 날린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형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당시 과장(科場)에서 아버지의 분부에 따른 시험관의 부정이 밝혀져 변방에 유배되어 충군(充軍)되었다. 그 뒤 1715년에 풀려나고, 1721년(경종 1)에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천거되었으며, 1728년(영조 4)에는 이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는데, 적괴 서호(瑞虎)를 포박하여 공을 세웠으나 체포된 난도(亂徒)들의 국문중 그들과 내통하였다는 자백을 받아 파직, 하옥 후 또다시 유배되었다.
그 뒤 1738년에 풀려나 1750년에 직첩을 환급받았다. 1763년에 당시 적괴 정세윤(鄭世胤)이 그와 이름이 같았던 까닭으로 억울하게 벌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져 신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