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시호
문정(文靖)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53년(영조 29)
사망 연도
1815년(순조 15)
본관
강릉(江陵)
주요 관직
우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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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경순(景淳). 병조판서 김시형(金始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상우(金尙遇)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화진(金華鎭)이며, 어머니는 정이검(鄭履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3년(영조 49) 성균관시에 합격하여 만녕전참봉(萬寧殿參奉)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진사가 되었다. 178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이어 홍문관교리·수찬·시강원사서·검상(檢詳)·동학교수(東學敎授)·서학교수를 거쳐서, 1785년에는 충청도경시관(忠淸道京試官)이 되었다.

이듬해에 강촌(江村) 400호가 불에 타자 지평으로 왕의 특명을 받고 파견되어 그 실정을 조사한 뒤 이들의 조세감면을 건의하였다. 1788년에는 전라도경시관이 되었고, 1791년에는 경상도장시도사(慶尙道掌試都事)가 되었으며, 당시 영남지방에 수재가 나자 왕명을 받아 각종 민폐를 개선하였다.

1793년 동부승지를 거쳐, 이후 형조참의·형조참판·동지의금부사·도총부부총관·성천부사·대사간·한성부좌윤·승문원제조·실록청당상 겸 동지춘추관사·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03년 충청감사에 제수되었으나 아버지상으로 사퇴하였고, 상을 마친 뒤 형조판서·예조판서·우참찬을 지냈다.

변려문에 능했고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였으며, 사부(詞賦)·시율(詩律)·표전(表箋)·송(頌)·조(詔)·책(策) 등의 문장에 뛰어났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경산집(經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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