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청로(淸老), 호는 규정(葵亭). 이천 출신. 아버지는 강자인(姜子仁)이다.
1510년(중종 5)에 생원 ·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 현량과(賢良科)에 삼등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임용되었으나, 이해 기묘사화로 파방(罷榜: 과거 시험의 급제자를 무효로 함)되었다.
1540년에 예빈시참봉이 되고, 1546년(명종 1)에 현량과가 복구되어 전적(典籍)에 올랐으나 사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인종이 죽자 매일 의관을 정제하고 북향으로 꿇어앉아 울었으며 노후에는 김안국(金安國)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며 세월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