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심중(心仲), 호는 경재(敬齋). 경지(慶智)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유근(慶由謹)이고, 아버지는 군수 경상(慶祥)이며, 어머니는 이질(李垤)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조광조(趙光祖) · 김식(金湜)과 막역하였으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1519년(중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같은 해 현량과에 삼등으로 급제하고 홍문관에 들어갔다. 이어 정자 · 저작을 역임하고, 박사가 되어 경연에서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기에 힘썼다. 같은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된 뒤 세상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책을 읽고 읊으며 지냈다.
1535년에는 형 경세신(慶世新)과 노비를 가지고 다투다 경세신이 자결하자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귀양을 갔다. 이 사건에 관해 『중종실록』에는 경세인이 형을 정신병자로 모함하고 사건의 정상을 은폐하려 한 악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기묘록보유』에서는 경세인의 형에게 실제 정신병이 있었으며 그는 모함으로 인해 귀양을 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1538년 석방되어 파주의 두문리에 농막을 짓고 살면서 ‘두문농은(斗文農隱)’이라 이름하고 평생을 마쳤다. 저서로 『경재유고(敬齋遺稿)』 · 『경연강독록(經筵講讀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