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치가(稚可) 또는 중가(仲可), 호는 노와(魯窩). 강최일(姜最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곽(姜漷)이고, 아버지는 강목(姜穆)이며, 어머니는 김여필(金汝弼) 딸이다.
1809년(순조 9)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치사관(致詞官) · 종부시주부 · 사헌부지평 · 홍문관수찬 · 교리 · 승지 · 회양부사를 거쳐 1843년(헌종 9) 선원보첩(璿源譜牒)을 계속 만든 공로로 종부시정으로 가자되었다. 1849년 대사간에 오르고 1851년(철종 2)에 병조참의에 제수되었다. 삼사(三司)를 두루 거치고 삼주(三州)의 외관을 지냈으나 말년에는 초가에서 독서를 낙으로 삼고 스스로를 작약산인(芍藥山人)이라 칭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