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회(景晦), 호는 근재(謹齋). 아버지는 익위사세마 강필효(姜必孝)이다.
1828년(순조 28) 감사에 의해 도천(道薦)되고 이듬해는 별천(別薦)되었다. 1832년 희릉참봉(禧陵參奉)을 거쳐 의영고봉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 많은 명사 · 고관과 교유하였다. 특히, 성근묵(成近默) · 성수묵(成遂默) · 정시용(鄭始容) · 정윤용(鄭允容) · 정정현(鄭鼎鉉) · 신석수(申錫壽) · 김계수(金啓洙) 등과의 교분이 두터웠고, 친구의 자제 중에는 그를 사사한 이가 많았다. 경미한 병으로 갑자기 죽자 경향간 유림에서는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