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달부(達夫), 호는 소은(簫隱) 또는 가은(歌隱). 정철(鄭澈)의 5대손이다. 일찍이 과거에 실패한 뒤 향리에 묻혀 학문에만 진력하였다.
1717년(숙종 43)에는 소두(疏頭)로서 전라도유생을 이끌고 상경,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문묘배향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1746년(영조 22) 학행(學行)으로 관찰사와 암행어사의 천거를 받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특히, 시에 능하여 김창흡(金昌翕)과의 화답이 유명하고, 그의 문집 『소은유고』에 230여수의 시가 전하여진다. 80세에 노인직으로 오위장·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현재 전라남도 창평의 지곡사(智谷祠)에 배향되어 있다. 저서로 『소은유고』 필사본 1책이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