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응실(應實), 호는 아계(丫溪). 고태보(高台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고계조(高繼祖)이고, 아버지는 고한형(高漢衡)이며, 어머니는 신희연(申希演)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서경덕(徐敬德)에게 학문을 배워 명성이 있었다. 1546년(명종 1) 유학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공조좌랑으로 『중종실록』의 편찬과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 지평이 되고 이듬해 김주(金澍)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첩의 아들을 적자로 하였다 하여 탄핵하였다.
1554년 평안도감군어사(平安道監軍御史)로 나가 진상하는 데 고통을 받는 백성들의 부담을 들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1555년 헌납, 이듬해 병조정랑을 거쳐, 1557년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양사(兩司)로부터 성품이 어리석고 시비에 어둡다는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1565년 교리 · 사간을 거쳐 이듬해 의정부사인 · 집의가 되었다. 1571년(선조 4) 승지가 되고, 1574년 전주부윤으로 나가 그 지방의 폐단을 제거하고 그 지역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같은해 전시(殿試)에서 대독관(對讀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