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담(龍潭). 자는 은보(殷甫). 아버지는 고효륜(高孝倫)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고 경서와 글씨에 뛰어났다. 1577년(선조 10) 무과에 급제하고, 어란만호(於蘭萬戶)와 방답첨절제사(防踏僉節制使) 등을 역임하였다.
어머니상을 당하여 고향인 남원에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최경회(崔慶會) 휘하의 부장이 되어 장수 · 무주 · 금산 등지에서 왜병과 맞서 싸웠다. 그 공로로 평창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마중나온 향리들이 평창은 외진 곳으로 난을 피하기 적합한 곳이라고 역설하였으나, 나라가 위급하므로 편안함을 취하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의병의 부장으로 계속 왜적과 싸웠다.
진주성이 위급하자 최경회와 함께 성에 들어가 다른 의병과 협력하여 성을 지키다가 순국하였다. 뒤에 한성부우윤에 추증되었다. 1649년(인조 27) 남원의 정충사(旌忠祠)에 제향되었다.